박씨 물어다준 제비
작성자 흥부
하여 그달 저달 다 지내고 춘절이 돌아오니, 흥부가 이왕 식자는 있는지라, 수숫대로 지은 집에 입춘을 써 붙이되, 글자를 새겨 붙었구나. 겨울 동자(冬字), 갈 거자(去字), 천지간에 좋을시고. 봄 춘자(春字), 올 래자(來字), 녹음방초날 비자(飛字), 우는 것은 짐승 수자(數字), 나는 것은 새 조자(鳥字), 연비려천(鳶飛戾天) 소리 개 연자(鳶字), 오색의관 꿩 치자(雉字), 월삼경파화지상에 슬피 우는 두견 견자(鵑字), 쌍거쌍래 제비 연자(燕字), 인간만물 찾을 심자(尋字), 이 집으로 들 입자(入字), 일월도 박식(迫蝕)하고 음양도 소생커든, 하물며 인물이야 성식(聲息)인들 없을소냐. 삼월 삼일 다다르니 소상강 떼기러기 가노라 하직하고 강남서 나온 제비 왔노라 현신할 제, 오대양에 앉았다가 비래비거 넘놀면서 흥부가 보고 반겨라고 좋을 호자(好字) 지저귀니, 흥부가 제비를 보고 경계하는 말이,

 

"고대광실 많건마는 수숫대 집에 와서 네 집을 지었다가 오뉴월 장마에 털썩 무너지면 그 아니 낭패오냐."

 

제비 듣지 아니하고 흙을 물어 집을 짓고 알을 안아 깨인 후에 날기 공부 힘쓸 때에, 의외에 구렁이가 들어 와서 제비 새끼를 몰수이 먹으니 흥부 깜짝 놀라 하는 말이,

 

"흉악하다 저 짐승아, 고량(膏梁)도 많건마는 무죄한 저 새끼를 몰식(沒食)하니 악착하다. 제비 새끼 대성황제 나 계시고, 불식고량 살아나니 인간에 해가 없고, 옛주인을 찾아오니 제 뜻이 유정하되, 제 새끼를 이제 다 참척(慘慽)을 보니 어찌 아니 불쌍하리. 저 짐승아, 패공의 용천검이 적혈이 비등할 제 백제(百帝)의 영혼인가 신장도 장할시고. 영주광야(永州廣野) 너른 뜰에 숙낭자에 해를 입히던 풍사망의 구렁인가 머리도 흉악하다."

 

이렇듯 경계할 제, 이에 제비 새끼를 하나가 공중에서 뚝 떨어져 재발 틈에 발이 빠져 두 발목이 자끈 부러져 피를 흘리고 발발 떨거늘, 흥부가 보고 펄적 뛰어 달려들어 제비 새끼를 손에 들고 불쌍히 여겨 하는 말이,

 

"불쌍하다 이 제비야, 은왕 성탕 은혜 미쳐 금수를 사랑하여 다 길러 내었더니, 이 지경이 되었으매 어찌 아니 가련하리. 여봅소, 아기어미 무슨 당사실 있읍네." "애고 굶기를 부자의 밥 먹듯 하며 무슨 당사실이 있단 말이요."

 

하고, 천만 의외 실 한닢 얻어 주거늘, 흥부가 칠산 조기 껍질을 벗겨 제비 다리를 싸고 실로 찬찬 동여 찬 이슬에 얹어두니, 십여 일이 지난 뒤 다리 완구하여 제 곳으로 가려 하고 하직할 제, 흥부가 비감하여 하는 말이,

 

"먼 길에 잘들 가고 명년 삼월에 다시 보자."

하니, 저 제비 거동 보소. 양우(揚羽) 광풍(狂風) 몸을 날려 백운을 냉소하고 주야로 날아 강남을 득달하니, 제비황제 보고 물으되,

"너는 어이 저나니."

 

제비 여쭈오되,

"소신의 부모가 조선에 나가 흥부의 집에다가 득주(得住)하고 소신 등 형제를 낳았삽더니, 의외 구렁이의 변을 만난 소신의 형제 다 죽고, 소신이 홀로 아니 죽으려 하여 바르작거리다가 뚝 떨어져 두 발목이 자끈 부러져 피를 흘리고 발발 떠온즉, 흥부가 여차여차하여 절각(折脚)이 의구하와 이제 돌아왔사오니 그 은혜를 십분지일이라도 갚기를 바라나이다."

 

제비황제 하교하되,
"그런 은공을 몰라서는 행세치 못할 금수라. 네 박씨를 갖다 주어 은혜를 갚으라."

하니, 제비 사은하고 박씨를 물고 삼월 삼일이 다다르니, 제비 건공에 떠서 여러 날 만에 흥부집에 이르러 넘놀 적에, 북해 흑룡이 여의주를 물고 채운간에 넘노는 듯, 단산 채봉이 죽실을 물고 오동상에 넘노는 듯, 춘풍 황앵이 나비를 물고 세류변에 넘노는 듯 이리 갸웃 저리 갸웃 넘노는 것 흥부 잠깐 보고 낙락하여 하는 말이,


"여봅소. 거년 가던 제비 무엇을 입에 물고 와서 넘노옵네."

이렇듯 말할 제, 제비 박씨를 흥부 앞에 떨어뜨리니, 흥부가 집어 보니 한가운데 보은표(報恩瓢)라 금자로 새겼거늘, 흥부 하는 말이,
"수안(隨岸)의 배암이 구슬을 물어다가 살린 은혜를 갚았으니, 저도 또한 생각하고 나를 갖다 주니 이것이 또한 보배로다."

 

흥부 아내 묻는 말이, "그 가운데 누르스름한 것이 아마 금인가 보외."

 

흥부가 대답하되,"금은 이제 없나니, 초한적의 진평(陳平)이가 범아부(范亞夫)를 쫓으려고 황금 사만근을 흩었으니 금은 이제 절종되었읍네."
"그러하면 옥인가 보외."
"옥도 이제는 없나니, 곤륜산에 불이 붙어 옥석이 구분(俱焚)하였으니 옥도 이제 없읍네."
"그러하면 야광준가 보외."
"야광주도 이제는 없나니, 제위왕(濟魏王)이 위혜왕(衛惠王)의 십이승(十二升) 야광주를 보고 깨어 버렸으니, 야광주도 이제 없듭네."
"그러하면 유리 호박인가 보외."
"유리 호박도 이제는 없나니, 주세종(周世宗)이 탐장(貪臟) 할 제 당나라 장갈(張褐)이가 술잔 만드노라고 다 들였으니, 유리 호박도 이제 없읍네."
"그러하면 쇤가 보외."
"쇠도 없나니, 진시황 위엄으로 구주(九州)의 쇠를 모아 금인(金人) 열 둘을 만들었으니 쇠도 없읍네."
"그러하면 대모 산혼가 보외."
"대모 산호도 없나니, 대모갑(玳瑁甲)은 병풍이요 산호수는 난간이라. 광리왕(廣利王)이 상문(桑門)의 수궁 보물을 다 들였으니 이제는 없읍네."
"그러하면 무엇인고."

흥부가 내달아 하는 말이,
"옳다, 이것이 박씨로다."

 

[남원문화원 남원의 고전문학 '흥부전' 전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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