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타는 흥부내외
작성자 흥부
하고 날을 보아 동편 처마 담장 아래 심어 두었더니, 삼사일에 순이나서 마디마디 잎이요, 줄기줄기 꽃이 피어 박 네 통이 열렸으되, 고마수영 전설같이 대동강상의 당두리같이 덩그렆게 달렸구나. 흥부가 반기 여겨 문자로써 말하되,

 

"유월에 화락하니 칠월에 성실이라. 대자(大者)는 여항(如缸)하고 소자는 여분이라. 어찌 아니 좋을소냐. 여봅소 비단이 한 끼라 하니, 한 통을 따서 속 일랑 지져 먹고 바가지는 팔아 쌀을 팔아다가 밥을 지어 먹어 봅세."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그 박이 유명하니 한로(寒露)를 아주 마쳐 견실커든 따봅세."

 

그달 저달 다 지나가고 팔구월이 다다라서 아주 견실하였으니, 박 한 통을 따놓고 양주(兩主) 켠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기어 주소 톱질이야. 북창한월(北窓寒月) 성미파(聲未罷)에 동자박(童子朴)도 가야(可也)로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하자손만세평(當下子孫萬世平)에 세간박도 가야로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으니 오운이 일어나며 청의동자 한 싸이 나오니, 저 동자 거동 보소. 약비봉래환학동 (若非奉萊喚鶴童)이면 필시 천대채약동(天臺採藥童)이라. 좌수에 유리반 우수에 대모반을 눈 위에 높이 들어 재배하고 하는 말이,

 

"천은병(天銀甁)에 넣은 것은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환혼주(還魂酒)요, 백옥병에 넣은 것은 소경 눈을 뜨이는 개안주(開眼酒)요, 금잔지(金盞紙)로 봉한 것은 벙어리 말하게 하는 개언초(開言초)요, 대모 접시에는 불로초요, 유리 접시에는 불사약이니, 값으로 의논하면 억만냥이 넘사오니 매매하여 쓰옵소서."

 

하고 간데 없는지라, 흥부 거동 보소. 얼씨고 절씨고 즐겁도다. 세상에 부자 많다 한들 사람 살리는 약이 있을 소냐.

흥부 아내 하는 말이,

 

"우리 집 약게 배판한 줄 알고 약 사러 올 이 없고, 아직 효험 빠르기는 밥만 못하외."

 

흥부말이,

"그러하면 저 통에 밥이 들었나 타봅세."

 

하고 또 한 통을 탄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우리 가난하기 일읍에 유명하매 주야 설워하더니, 부지허명 (不知許名) 고대 천냥 일조에 얻었으니 어찌 아니 좋을소냐.

 

"슬근슬근 톱질이야, 어서 타세 톱질이야."

 

툭 타 놓으니 온갖 세간이 들었으되, 자개함롱 · 반닫이 · 용장 · 봉장 · 제두주 · 쇄금들미삼층장 · 게자다리 옷걸이 · 쌍룡 그린 빗접고비 · 용두머리 장목비 · 놋촛대 · 광명두리 · 요강 · 타구 벌여 놓고 선단이불 비단요며 원앙금침 잣벼개를 쌓아 놓고 사랑 기물 볼작시면 용목쾌상 · 벼룻집 · 화류책장 · 각게수리 · 용연벼루 · 앵무연적 벌여 놓고, 천자 · 유합(類合) · 동몽선습 · 사략 · 통감 · 논어 · 맹자 · 시전 · 서전 · 소학 · 대학 등 책을 쌓았고, 그 곁에 안경 · 석경(石鏡) · 화경 · 육칠경 · 각색 필묵 퇴침에 늘어 있고, 부엌 기물을 의논컨대 노구새 · 옹곱돌솥 · 왜솥 · 절솥 · 통노구 무쇠 · 두멍 다리쇠 받쳐 있고, 왜하기(倭火器) · 당화기 · 동래반상(東來盤床) · 안성유기(安城鍮器) 등물 찬장에 들어 있고,

함박 · 쪽박이 · 남박 · 항아리 · 옹박이 · 동체 · 깁체 · 어럼이 · 침채(沈菜)독 · 장독 · 가마 · 승교 등물이 꾸역꾸역 나오니, 어찌 아니 좋을손가. 또 한통을 탄다.

 

"슬근슬근 톱질이야, 우리 일을 생각하니 엊그제가 꿈이로다. 부지허명 고대 천냥을 일조에 얻었으니 어찌 아니 즐거우랴.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으니 집지위와 오곡이 나온다. 명당에 집터를 닦아 안방 · 대청 · 행랑 · 몸채 · 내외분함 물림퇴 · 살미살창 가로닫이 입 구자로 지어 놓고, 앞뒤 장원 , 마구 곡간 등 속을 좌우에 벌여 짓고, 양지에 방아 걸고 음지에 우물파고, 울 안에 벌통 놓고 울 밖에 원두 놓고 온갖 곡식 다 들었다.

동편 곡간에 벼 오천석, 서편 곡간에 쌀 오천석, 두태(豆太) 잡곡 오천석, 참깨 들깨 각 삼천석 딴 노적하여 있고, 돈 십만 구천냥 은고 안에 쌓아 두고, 일용전 오백 열냥은 벽장 안에 넣어 두고, 온갖 비단 다 들었다.

 

모단 · 대단 · 이광단, 궁초 · 숙초 · 쌍문초, 제갈선생 와룡단, 조자룡의 상사단, 뭉게뭉게 운문대단, 또드락 꿉벅 말굽장단, 대천바다 자개문장단, 해 돋았다 일광단, 달 돋았다 월광단, 요지왕모 천도문, 구십춘광 명주문, 엄동설한 육화문, 대접문 · 완자문 · 한단 영초단 각색 비단 한 필이 들어 있고,

길주 명천 좋은 베, 회령 종성 고운 베, 온갖 베와 한산모시 · 장성모시 · 계추리 · 황저포 등 모든 모시와 고양 화전 이생원의 맏딸이 보름 만이 마쳐 내는 난대 하세목, 송도 야다리목, 강진 내이 황주목, 의성목 한편에 들어 있고, 말매니 같은 사나이 종과 열쇠 같은 아이 종과 앵무 같은 계집종이 나며 들며 사환하고, 우걱부리 · 잣박부리 · 사족발이 · 고리눈이 우억우억 실어들여서 앞뜰에도 노적이요, 뒷뜰에도 노적이요, 안방에도 노적이요 부엌에도 노적이요 담발담발 노적이라, 어찌 아니 좋을 소냐.

 

흥부 아내 좋아라고,

봅소, 이녁이나 내나 옷이 없으니 비단으로 왼 몸을 감아 봅세."

 

덤불 밑에 조그만 박 한 통을 따서 켜려 하니, 흥부 아내 하는 말이,

"그 박을랑 켜지 맙소."

 

흥부가 대답하되, "내복에 태인 것이니 켜겠읍네."

 

하고 손으로 켜내니, 어여쁜 계집이 나오며 흥부에게 절을 하니, 흥부 놀라 묻는 말이,

"뉘라 하시오."

"내가 비요."

"비라 하니 무슨 비요."

"양귀비요."

"그러하면 어찌하여 왔소."

"강남 황제가 날더러 그대의 첩이 되라 하시기에 왔으니 귀히 보소서."

하니, 흥부는 좋아하되 흥부 아내 내색하여 하는 말이,

"애고 저 꼴을 뉘가 볼꼬. 내 언제부터 켜지 말자 하였지."

 

[남원문화원 남원의 고전문학 '흥부전' 전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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