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귀에 당하는 놀부(1)
작성자 흥부
대대야 일시에 내달으며 달려들어 놀부를 덜미잡이하여 가로 떨어치니, 놀부 거꾸로 떨어져.
"애고애고 초라니 형님. 이것이 어인 일이요. 생사람을 병신 만들지 말고 분부하면 하라는 대로 하리이다." 


하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거늘, 초라니 하는 말이,
"이놈, 목숨이 귀하냐 돈이 귀하냐. 네 명을 보전하려 거든 돈 오천냥만 내어라" 


놀부 생각하되 일이 도무지 틀렸으매, 앙탈하여 쓸데없다 하고 돈 오천냥을 내어주며,
"앞통속을 자세히 알거든 일러 달라."

 

하니, 초라니 대답하되,
"우리는 각통이라 자세치 못하거니와, 어느 통인지 분명히 생금독이 들었으니 도모지 타고 보라." 


하고 흔적없이 가더라. 놀부 이 말을 듣고 허욕이 북받쳐 동산으로 치달아 박 한통을 따다가 켜라 하니,
째보 가장 위로하는 체하고 하는 말이, 


"이 사람아, 그만켜소. 다 그러할까 하네. 돈을 들이고 자네 매 맞는 양을 보니, 내가 아니 타겠네. 그만 쉬어 사오일 후에 또 타 보세."

하니, 놀부 하는 말이,
"아무렴 오죽할까, 아직도 돈냥이 있으니 또 그럴 양으로 마저 타고 보자" 


하고 타려 할 제 째보가 하는 말이,
"자네 마음이 그러하니 굳이 말리지 못하거니와, 이번 박 타는 삯도 먼저 내어 오소." 


하니, 놀부 또 열냥을 선급하고 한참을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사람이 숙덕거리는 소리 나거늘 놀부 이 소리를 듣고 가슴이 끔찍하여 미어지는 듯 숨이 차 헐떡헐떡이다가 한마디 소리 지르고 자빠지거늘, 째보 하는 말이, 


"그 무엇을 보고 이다지 놀라는가." 


놀부 하는 말이,
"자내는 귀가 먹었는가, 이 소리를 못 듣는가. 또 자박 이만한 일이 벌어졌네. 이 박은 그만둘밖에 하릴없네." 


하니, 박 속에서 호령하는 말이,
"이놈 놀부야, 그만둔단 말이 무슨 말인고. 바삐 타라." 


하거늘, 놀부 하릴없어 마저 타니, 양반 천여 명이 말콩망태를 쓰고 우그럭 벙거지 쓴 놈을 데리고 나오면서 각각 풍월을 하되, 서남협구(西南峽口) 무산벽(巫山璧)하니 대강이 번안신예연을 추강(秋江)이 적막어룡냉(寂寞漁龍冷)을 하니 인재서풍증선루(人在風仲宣樓)라. 혹 대학도 읽으며, 혹 맹자도 읽으며 이렇듯 집을 뒤지는지라. 놀부 이 형상을 보고 빼려하니, 양반이 호령하되,


"하인 없느냐, 저놈이 그치려 하니 바삐 움쳐라." 


하니, 여러 하인이 달려들어 열 손가락을 벌려다가 팔매뺨을 눈에 불이 번쩍 나도록 치며, 덜미잡고 오줌이 진상하여 깔리거늘, 양반이 분부하되,
"네 그놈의 대고리를 빼어 밑구멍에 박으라. 네 달아나면 면할까 바랍갑이라 하늘로 오르며, 두더지라 땅으로 들까. 상전을 모르고 거만하니, 저런 놈은 사매로 쳐 죽이리라." 


놀부 비는 말이,
"과연 몰랐사오니 생원님 덕분에 살려지이다." 


양반이 하인을 불러 농을 열고 문서를 주섬주섬 내어 놓고 하는 말이, "네 이 문서를 보라. 삼대가 우리 종이로다. 오늘이야 너를 찾았으니, 내 속량(贖良)을 하든지 연년이 공을 하든지 작정하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너를 잡아다가 부리리라." 


놀부 여쭈오되,
"소인이 과연 잔속을 몰랐사오니, 속량을 할진대 얼마나 하리이까." 


양반이 하는 말이,
"어찌 과히 하랴. 오천냥만 바치고 문서를 찾아가라."


하거늘, 놀부 즉시 고문을 열고 오천냥을 내어 주니라. 이때 놀부 계집이 이말을 듣고 땅을 두드리며 울고 하는 말이,
"애고애고 원수의 박일네. 난데없는 상전이라고 곡절없는 속량은 무슨 일고. 이만냥돈을 이름 없이 줄 수 없으니 나의 못할 노릇 그만하오."


놀부하는 말이,
"에라 이년 물렀거라. 또 일이 틀리겠다. 이번 돈 들인 것은 아깝지 아니하다. 상전을 두고 서야 살 수 있느냐. 궁용한 판에 아는 듯 모르는 듯 잘 되어 버렸다."


하며, 또 동산에 올라가서 살펴보니, 수 통 박이 아직도 무수한지라. 한 통을 따다 놓고 타려 할 새, 째보 하는 말이,
"이번은 선셈을 아니 하려나, 일은 일대로 할 것이니 삯을 내어 오소." 


하니, 놀부 이놈의 의수의 들어 돈 열냥을 주며 하는 말이, "자네도 보거니와 공연히 매만 맞고 생돈을 들이니 그 아니 원통한가, 이번부터는 두 통에 열냥씩 정하세." 


하니, 째보 허락하고 박을 반만 타다가 귀를 기울여 들으니 소고 치는 소리가 들리는지라, 놀부 하는 말이,
"째보야, 이를 또 어찌하잔 말고." 


째보하는 말이,
"이왕 시작한 것이니 어서 타고 구경하세, 슬근슬근 톱질이야." 


툭 타 놓고 보니, 만여 명 사당거사(祠當居士) 뭉게뭉게 나오며 소고를 치며 다각다각 소리한다. 


"오동추야 달 밝은 방에 임 생각이 새로워라. 임도 나를 생각는가." 


흑 방아타령, 흑 정주(定州)타령, 흑 유산가·달거리·등타령, 흑 춘면곡(春眠曲) 권주가등 온갖 가사를 부르며 거사놈은 노방태 평양자, 길짐거사 길을 인도하고, 번개소고 번득이고 긴 염불 짧은 염불하며 나오면서 일변 놀부의 사족을 뜨며 허영 가래를 치니, 놀부 오장이 나올 듯하여 살고지라 애걸하니, 사당거사들이 하는 말이,
"네 명을 지탱하려 하거든 논 문서와 밭문서를 죄죄 내어오라." 하거늘, 놀부 견딜 수 없어 전답 문서를 주어 보내니라.


[남원문화원 남원의 고전문학 '흥부전' 전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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