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와 놀부
작성자 흥부
화설, 경상 · 전라 양도 지경에서 사는 사람이 있으니, 놀부는 형이요 흥부는 아우라. 놀부 심사 무거(無據) 하여 부모 생전 분재 전답을 홀로 차지하고, 흥부같은 어진 동생을 구박하여 건넛산 언덕 밑에 내떨고 나가며 조롱하고 들어가며 비양하니 어찌 아니 무지하리.

 

놀부 심사를 볼작시면 초상난 데 춤추기, 불붙는 데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개 잡기, 장에가면 억매(抑賣) 흥정하기, 집에서 몹쓸 노릇하기, 우는 아해 볼기 치기, 갓난 아해 똥 먹이기, 무죄한 놈 뺨 치기, 빚값에 계집 빼앗기, 늙은 영감 덜미 잡기, 아해 밴 계집 배 차기, 우물 밑에 똥 누기, 오려 논에 물 터놓기, 잦힌 밥에 돌 퍼붓기, 패는 곡식 이삭 자르기, 논두렁에 구멍 뚫기, 호박에 말뚝 박기, 곱사장이 엎어 놓고 발꿈치로 탕탕치기, 심사가 모과나무의 아들이라. 이놈의 심술은 이러하되, 집은 부자라 호의호식 하는구나.

 

흥부는 집도없이 집을 지으려고 집 재목을 내려갈 양이면 만첩청산 들어가서 소부등(小不等) 대부등 (大不等)을 와드렁 퉁탕 베어다가 안방 ·대청 · 행랑 · 몸채 · 내외 분합(分閤) 물림퇴에 살미살창 가로닫이 입구자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놈은 집재목을 내려하고 수수밭 틈으로 들어가서 수수깡 한 단을 베어다가 안방 · 대청 · 행랑 · 몸채 두루 짚어 말집을 꽉 짓고 돌아 보니, 수숫대 반 단이 그저 남았구나.

 

방안이 넓든지 말든지 양주(兩主) 드리누워 기지개켜면 발은 마당으로 가고, 대고리는 뒤곁으로 맹자 아래 대문하고 엉덩이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니, 동리 사람이 출입하다가 이 엉덩이 불러들이소 하는 소리, 흥부 듣고 깜짝 놀라 대성통곡 우는 소리,

 

"애고답답 설운지고. 어떤 사람 팔자 좋아 대광보국숭록대부삼태육경(大匡輔國崇祿大夫三台六卿) 되어 나서 고대광실 좋은 집에 부귀공명 누리면서 호의호식 지내는고. 내 팔자무슨 일로 말만한 오막집에 성소광어공정(星疎光於空庭)하니 지붕 아래 별이 뵈고, 청천한운세우시(靑天寒雲細雨時)에 우대랑이 방중이라. 문 밖에 가랑비 오면 방 안에 큰 비 오고 폐석초갈 찬방 안에 헌 자리 벼룩 빈대 등이 피를 빨아먹고, 앞문에는 살만 남고 뒷벽에는 외(외 흙벽을 만들때 댓가지나 싸리로 얽어 세워 흙을 받는 벽체)만 남아 동지섣달 한풍이 살 쏘듯 들어오고 어린 자식 젖 달라하고 자란 자식 밥 달라니 차마 설워 못살겠네."

 

가난한 중 웬 자식은 풀마다 낳아서 한 서른남은 되니, 입힐 길이 전혀 없어 한방에 몰아넣고 멍석으로 쓰이고 대강이만 내어놓으니, 한 녀석이 똥이 마려우면 뭇녀석이 시배(侍陪)로 따라간다. 그 중에 값진 것을 다 찾는구나. 한 녀석이 나오면서


"애고 어머니, 우리 열구자탕(悅口子湯)에 국수 말아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나앉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벙거지를 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내달으며, "애고 어머니, 우리 개장국에 흰밥 조금 먹으면."
또 한 녀석이 나오며, "애고 어머니, 대추 찰떡 먹으면."

"애고 이녀석들아, 호박국도 못 얻어 먹는데 보채지나 말려무나."

또 한 녀석이 나오며, "애고 어머니, 우에 올부터 불두덩이 가려우니 날 장가 들여 주오."

 

이렇듯 보챈들 무엇 먹여 살려낼꼬. 집안에 먹을 것이 있든지 없든지 소반이 네 발로 하늘께 축수하고, 솥이 목을 매어 달렸고 조리가 턱걸이를 하고, 밥을 지어 먹으려면 책력을 보아 갑자일이면 한 때씩 먹고, 새앙쥐가 쌀알을 얻으려고 밤낮 보름을 다니다가 다리에 가래톳이 서서 파종(破腫)하고 앓는 소리, 동리 사람이 잠을 못 자니 어찌 아니 서러울손가.

 

"아가아가 우지 마라. 아무것도 젖 달란들 무엇 먹고 젖이나며, 아무리 밥 달란들 어디서 밥이 나랴." 달래 올 제 흥부 마음 인후하여 청산유수와 곤륜옥결(崑崙玉潔)이라. 성덕을 본받고 악인을 저어하며 물욕에 탐이 없고 주색에 무심하니, 마음이 이러하매 부귀를 바랄소냐.

 

흥부 아내 하는 말이,

"애고 여봅소, 부질없는 청렴 맙소. 안자(顔子) 단표(簞瓢) 주린 염치 삼십 조사(早死)하였고, 백이숙제 (白夷淑濟) 주린 염치 청루 소녀 웃었으니, 부질없는 청렴 말고 저 자식들 굶겨 죽이겠으니, 아주버니네 집에 가서 쌀이 되나 벼가 되나 얻어 옵소."

흥부가 하는 말이,


"낯을 쇠우에 슬훈고. 형님이 음식 끝을 보면 사촌을 몰라보고 똥싸도록 치옵나니, 그 매를 뉘 아들놈이 맞는단 말이요." "애고 동량은 못 준들 쪽박조차 깨칠손가. 맞으나 아니 쏘아나 본다고 건너가 봅소."

 

흥부 이 말을 듣고 형의 집에 건너갈 제, 치장을 볼작시면 편자 없는 헌 망건에 박쪼가리 관자 달고, 물렛줄로 당끈 달아 대고리 터지게 동이고, 깃만 남은 중치막 동강 이은 헌술띠를 흉복통에 눌로 띠고, 떨어진 헌 고의(袴依)에 청올치로 대님 매고, 헌 짚신 감발하고 세 살부채 손에 쥐고, 서홉들이 오망자루 꽁무늬에 비슥 차고, 바람 맞은 병인같이 잘 쓰는 쇄소(灑掃)같이 어슥비슥 건너달고 형의 집에 들어가서 전후좌우 바라보니, 앞노적, 뒷노적, 멍에노적 담불담불 쌓았으니, 흥부 마음 즐거우나 놀부심사 무거(無據)하여 형제끼리 내외하여 구박이 태심하니, 흥부 하릴 없이 뜰 아래서 문안하니, 놀부가 묻는 말이,

 

"네가 뉜고."

"내가 흥부요."

"흥부가 뉘 아들인가."

 

"애고 형님 이것이 웬 말이요. 비나이다, 형님전에 비나이다. 세 끼 굶어 누운 자식 살려낼 길 전혀 없으니 쌀이 되나 벼가 되나 양단간에 주시면 품을 판들 못 갚으며, 일을 한들 공할손가. 부디 옛일을 생각하여 사람을 살려 주오."

 

애걸하니 놀부놈의 거동 보소. 성낸 눈을 부릅뜨고 볼을 올려 호령하되.

 

"너도 염치없다. 내말 들어 보아라. 천불생무록지인(天不生無祿之人)이요, 지불생무명지초 (地不生無名之草)라. 네 복을 누를 주고 나를 이리 보채느뇨. 쌀이 많이 있다 한들 너 주자고 노적 헐며, 벼가 많이 있다고 너 주자고 섬을 헐며, 돈이 많이 있다 한들 괴목궤에 가득든 것을 문을 열며, 가룻되나 주자 한들 북고왕 염소독에 가득 넣은 것을 독을 열며, 의복이나 주자 한들 집안이 고루 벗었거든 너를 어찌주며, 찬밥이나 주자 한들 새끼 낳은 거먹암캐 부엌에 누웠거든 너 주자고 개를 굶기며, 지거미나 주자 한들 구중방(九重房) 우리 안에 새끼 낳은 돝(돼지)이 누웠으니 너 주자고 돝을 굶기며, 겻섬이나 주자 한들 큰 농우(소)가 네 필이니 너 주자고 소를 굶기랴. 염치없다."

 

흥부놈아 하고, 주먹을 불끈 쥐어 뒤꼭지를 꽉 잡으며, 몽둥이를 지끈 꺾어 손재승의 매질하듯 원화상의  법고 치듯 어주 쾅쾅 두드리니, 흥부 울며 이른 말이,

 

"애고 형님 이것이 웬 일이요. 방약무인 도척(盜척)이도 이에서 성현이요, 무지불측 관숙(無知不測 菅叔) 이도 이에서 군자로다. 우리 형제 어찌하여 이다지 극악한고."

 

탄식하고 돌아오니, 흥부 아내 거동 보소. 흥부 오기를 기다리며 우는 아기 달래올 제 물레질하며,"아가아가 우지마라. 어제 저녁 김동지 집 용정방아 찧어 주고 쌀 한 되 얻어다가 너희들만 끓여 주고 우리 양주 어제 저녁 이때까지 그저 있다. 잉잉잉 너 아버지 저 건너 아주버니 집에 가서 돈이 되나 쌀이 양단간에 얻어 오면, 밥을 짓고 국을 끓여 너도 먹고 나도 먹자. 우지마라."

 

잉잉잉 아무리 달래어도 악치듯 보채는구나. 흥부 아내 하릴없어 흥부 오기 기다릴 제 의복 치장 볼작시면 깃만 남은 저고리, 다 떨어진 누비바지, 몽땅치마 떨쳐입고 목만 남은 헌 버선에 뒤축 없는 짚신 신고 문 밖에 썩 나서며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다릴 제, 칠년 대한 가문 날에 비 오기 기다리듯, 독수 공방에 낭군 기다리듯, 춘향이 죽게 되어 이도령 기다리듯, 과년한 노처녀 시집 가기 기다리듯, 삼십 넘은 노도령 장가 가기 기다리듯, 장중(場中)에 들어가서 과거하기 기다리듯 세 끼를 굶어 누운 자식 흥부 오기 기다린다.

 

[남원문화원 남원의 고전문학 '흥부전' 전문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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